순례자가 받은 세 가지 선물 (요한복음 3장 16절) |
어느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고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정답을 불러주며 답을 맞춰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간 헛갈린 선생님이 마지막 문제의 답이 3번인데 2번이라고 잘못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웅성 웅성거립니다. 정답이 이상하다는 반응이지요. 한쪽에서는 “선생님!~ 정답이... 이상 한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동시에 그 반에서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신이 나서 외칩니다. “아싸! 하나 맞았다!” 그 학생은 시험지의 모든 문제를 다 틀리고 정답을 잘못 불러 오답을 정답으로 불러주니까 하나 맞았다고 좋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인생의 문제를 잘 못 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답을 듣고서 ‘아싸, 맞았다!’라고 좋아하는 학생처럼, 잘못된 답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성공이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질문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질문이 없는 인생은 선택이 없는 인생이고, 고민과 갈등이 없는 인생이고, 목적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질문이 없으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제대로 되었는지 점검할 수가 없습니다.
여하튼 인간이라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질문이 없을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의 질문이라도 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하는 질문을 보면 그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인지, 아니면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선생님께 하는 질문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생님, 소풍 언제 가요?” 또 하나는 “선생님, 방학 언제 해요?” 또 하나는 “선생님, 우리학교 개교기념일이 언제예요?” 다 노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관심이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이 다릅니다. 자기가 공부하면서, 예습하면서 모르는 것을 질문을 합니다. 학교 공부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의 책을 읽다가 막힌 부분을 선생님께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때 선생님이 대답을 잘 해주면, 그 학생은 막힌 것이 뻥 뚫린 것처럼, 쑥쑥 실력이 향상되고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얻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어떤 질문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대충 그냥 살아갑니까? 골치 아프게 무슨 질문을 하면서 사느냐고 생각하십니까? 골치 아프더라도 꼭 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질문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것이 전부라면 여러분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심각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입니다.
이 질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이, 생물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명쾌한 대답은 진리의 말씀인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식물과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만 있으면 인간이 아닙니다. 살덩어리, 비개덩어리일 뿐입니다. 몸은 없고 혼과 영만 있어도 인간이 아닙니다. 몸과 혼과 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존재할 때, 인간입니다. 몸은 다섯 가지 감각 기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몸이 반응합니다. 혼은 생각, 마음, 이성 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은 물질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 영원한 것, 영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배불리 먹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다섯 가지 감각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느껴지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적인 호기심도 있고, 의미가 없는 행동은 하기 싫어하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정신세계의 성취를 느낍니다. 아름다운 것,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또한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영적인 세계, 영원한 세계를 그리워합니다.
성경 창세기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본래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되어 영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분리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불안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영적인 존재와의 소통을 통해서 열립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세계가 열립니다. 영적인 존재는 영적인 충족감을 느껴야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이 영적인 충족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동물 중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제일 대표적이고 중심적인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정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이요, 존엄성의 결정체입니다. 다른 동식물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동식물에게는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인간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를 구별하여 행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때,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평안을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영혼이 안식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배를 통하여 영혼이 새 힘을 얻고, 예배를 통하여 영혼이 정화되고, 새로워집니다.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인생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종착지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입니다. 태어나기는 했는데 어디로부터 왔는지, 또 살다가 죽는 인생인데 죽는 것이 끝인지,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일컬어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불확실한 것을 품고 있는 말입니다. 나그네라는 말 속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면, 우리 인생은 허무하고 무상한 나그네 인생입니다. 나그네 인생이라는 말속에 막연하게 어디론가 가는 것이겠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면, 인생을 잘못 표현한 말입니다.
성경은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순례자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이 나그네가 아닌 순례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그네와 순례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냥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살아간다면 나그네입니다. 떠돌다가 어디론가 가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나그네처럼 한 곳에 머물지는 않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사는 사람은 순례자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이 순례자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이 세상을 지나가는 사람이 순례자입니다. 여러분은 나그네입니까? 순례자입니까? 그렇다면 순례자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길이라고 해서 다 가야 하는 길이 아닙니다.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고, 꼭 가야하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 나 있다고 해서 아무 길이나 갈 수는 없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엉뚱한 길을 간다면 헛수고 할 뿐이며, 시간만 낭비할 뿐이고, 그 길은 허무와 불행과 고통으로 끌고 가는 길입니다. 목적지가 잘못된 출발은 불행을 가져다 줍니다.
2008년 12월 13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제일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된 제1회 꼬막마라톤대회에서 웃지 못 할 헤프닝이 발생했습니다. 코스 표시와 안내가 잘못되어 참가자들이 말 그대로 역주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뒤이어 따라온 참가자들과 뒤엉키면서 참가한 3000여 명의 선수들간 혼선이 빚어져 그 결과 시상식도 제대로 치뤄지지 않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대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웃기는 마라톤이 되었습니다. 목적지를 잘못 알고 뛴 것입니다.
인생의 순례자의 길은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뒤죽박죽이 아닙니다. 막연한 곳이 아닙니다. 순례자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 속에 약속하신 우리의 목적지, 우리 순례 인생의 종착지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의 고통과 슬픔과 한숨과 질병을 끝내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잔치입니다. 그런데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잔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초대장이 없음으로 입장할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잔치야, 동네 잔치였으니 동네 강아지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초대장을 보여주든지, 초대한 손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를 확인되어야 입장할 수 있듯이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외국 여행을 하려면 꼭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권과 비자 같은 것입니다. 여권 없이 다른 나라에 입국을 하려고 하면 입국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추방됩니다. 천국에 가려면 천국 여권과 비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해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요, 구원의 진리요,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천국 비자가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하나 밖에 없는 성자 하나님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 실수, 실패, 후회를 지워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셔서 여러분이 살면서 지은 모든 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들, 후회스러운 사건들, 그 어떤 비누나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죄악들을 정결하게 씻어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으면 죄를 용서 받고 정결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받는 것을 영생을 얻는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구원이란 대개 죄와 자아, 지옥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우리 대신 죄값을 치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당하시고,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마존 강에는 ‘피라니아’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도미처럼 넓죽하게 생겼고 이가 날카롭습니다. 피라니아는 강물 속에 무엇인가 나타나기만 하면 때로 몰려들어 뼈만 남긴 채 모두 먹어 치웁니다. 이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턱의 힘이 아주 세기 때문에 삽시간에 덤벼들어 뜯어 먹습니다. 그래서 피라니아가 살고 있는 강물 속에 짐승이고 사람이고 빠지는 날에는 살아 나오기 힘듭니다. 피라니아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양을 몰고 강을 건너는 일입니다. 피라니아가 살고 있는 강 근처에서 목양하던 사람들은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강을 건널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가축을 이끌고 강을 건너야 한다면 먼저 양이나 다른 짐승 한 마리를 희생제물로 강물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면 피라니아가 떼로 몰려들어 그것을 뜯어먹는 동안에 수많은 다른 양을 다른 쪽으로 몰아 강을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피의 대가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한 마리의 양이 희생됨으로 다른 양들이 아마존 강을 건널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희생하여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의 강을 건너 영생의 길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구원해주시는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이 순례자가 하나님께 받는 선물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세 번째 중요한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질문입니다. 목적이 있어야 목표를 세우고 삶이 방향을 잡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목적 없는 삶은 허무하고 무의미합니다.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으니 가치 또한 못 느끼게 됩니다. 목적, 의미,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게 될 때,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물론 구원 받는 것, 영생을 선물로 얻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선물의 내용이 많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 때 천국으로 들어가 영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순례자로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인생의 여행 기간 동안 자유를 누리는 것, 인생 목적을 발견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목적 없이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에 태어났고 살아있으니 여러분의 삶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것,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뜻이 있는데, 그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자기 중심성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본능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가치를 느낍니다. 행복을 느낍니다. 자아실현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인생의 목적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네 번째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세 번째 선물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이론과 논리 속의 신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고 교제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 바람이 스쳐지나갈 때 일어나는 현상은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 중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입니다. 보이는 것만 인정하고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고 보이는 것만으로 이 세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더 생각하면,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이 세상이 보이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만 하더라도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보이는 손이나 발이 여러분을 움직이게 합니까? 물론 손과 발을 움직여야 여러분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여러분의 마음, 생각, 정신, 영혼이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생각, 영혼이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존재하고, 그것에 의해 여러분이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음으로만이 받아들일 수 있고, 믿음으로만이 경험될 수 있고, 믿음으로만이 반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영이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인정하고, 자신 스스로 설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던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함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이 완전하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신은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함께 하심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입니다. 믿음은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차원이 다른 상태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원이 다른 존재가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인간이 인격적인 관계로 연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순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합니다. 믿음으로 근심걱정불안두려움을, 질병을, 고난을, 슬픔을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받았습니까? 이 믿음이 있습니까? 마음을 열면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믿음이 생깁니다.
인생에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십니다. 그 대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선물로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그네 인생이 아니라 순례자 인생임을 깨닫고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순례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세 가지 선물은 구원과 인생의 목적과 믿음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도록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아있으니까, 지금 젊으니까, 지금 바쁘니까, 지금 행복한 것 같으니까, 지금 별 문제가 없으니까, 이렇게 그냥 살아도 된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중요한 질문을 여러분 스스로에게 해 보십시오. 그 대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펑크 난 바퀴가 달린 차를 그냥 괜찮다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확신과 인생의 목적과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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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05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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