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회복 (에베소서 5장 31-6장 4절) |
80살 된 할머니가 동창들 모임에 나갔다 오더니 짜증을 내었습니다. 집에 있던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래 할멈! 동창 중에 누가 자기 자랑을 많이 했나 보지? 아니면 할멈이 입고 나간 옷이 추레해서 그랬나? 아니면 동창 중에 누가 할멈에게 싫은 소리를 했나?” 할머니의 맘을 풀어주려고 애를 쓰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더 신경질을 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자꾸만 묻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가 쏘아 붙이듯이 하는 말, “이 나이가 되도록 영감이 살아 있는 집이 나 혼자뿐이라서 그래욧!” 다들 자유로운 데 자기만 영감 수발하느라 늙어서까지 고생한다는 불평입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시어머니가 김치를 해 가지고 아들 집에 갔습니다. 아파트 문이 열려 있기에 조용히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아들 무릎에 누워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기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물론 당신이지.” “그 다음은?” “우리 아이들.” “세 번째는? 장인 장모님.” “네 번째는?” “우리 집 강아지.” 그러다가 시어머니는 마지막 다섯 번째로 겨우 턱걸이를 했습니다. 아들에게 다섯 번째 순서가 된 시어머니는 아들 집을 나와 김치를 경비실에 맡겨 두고 이런 메모를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1번아 잘 먹어라. 5번이 두고 간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가정예배 시간에 전도서 6장 3절 말씀,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를 읽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요즘 이런 씁쓸한 유머가 돌더라. 아들이 하나인 부모는 골방에서 죽고, 아들 둘인 부모는 큰 아들 집, 작은 아들집 왔다 갔다 하다가 길에서 죽고, 딸 하나인 부모는 주방에서 죽고, 딸 둘 둔 부모는 비행기 안에서 죽는다네. 딸들이 서로 해외여행 보내주어서 여행하다가 죽는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딸이 둘이니까 비행기 안에서 죽는 건가?” 아내가 남편의 말을 받아서 하는 말이 “그건 옛날 말이고 요즘은 딸 둘 둔 부모는 고무장갑 끼고 죽는대요. 두 집 애 보랴, 살림해 주랴 정신없이 바빠서 고무장갑 벗을 시간이 없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유머는 그 시대의 상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유머 속에 세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유머를 듣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이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10년 후 세상]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중앙 SUNDAY가 창간 4주년 기획으로, 21세기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현상에 맞춰 한국의 석학들이 내일의 한국사회를 진단한 내용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때는 2021년, 65세 김 민준 씨는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닙니다. 그 가방은 휴대전화 크기의 기계 3대와 갖가지 튜브, 각종 센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김씨는 1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 대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왼쪽 눈과 심장, 간, 췌장, 폐, 신장을 모두 바꿔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장기는 부분 대체가 가능했지만 개발 기술이 부족한 일부 장기는 튜브를 통해 몸 밖의 외부 배터리와 센서에 연결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개된 10년 후 김 씨의 사례는 가상 소설이 아닙니다. 1980년대 히트를 친 TV 드라마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김 씨의 몸은 인공장기로 채워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인공장기 개발이 발달하여 장수 인구와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100세 장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38.2%에 달해 세계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최저출산에 초고령국가가 되면 평생 자신의 부양을 스스로 책임져야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수퍼 센터내리언(Super centeneri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110세를 넘어 한 세기 이상 사는 초장수 노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인간 수명이 연장이 되면 우려되는 바도 큽니다. 가족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답니다. 장기 이식을 받은 부모의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는 데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장기간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이 증가합니다. 결국 생활고와 고독에 지켜 노인 자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노노 老老 케어’라는 새로운 가족문화도 예상된다고 합니다. 100세 고령 노인이 130세 초고령 부모를 부양하는 생활상입니다. 결국 노인부양 문제는 정부나 공동체의 부담을 늘려 국가 전체의 활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게 돼 인구 구조가 역삼각형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렇게 앞으로 우리사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변화에 따라 우리 삶의 기초이며, 중심 공동체인 가정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것이 건강한 가정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건강하게 변해져 간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가정이 사회의 변화에 대해 건강하게 변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며, 그 문제를 겪는 가정과 가족은 불행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계절이 변하는 환절기에 건강하게 잘 적응해 가면 문제가 없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환절기를 만나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의 약한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여 아프던지 죽는 경우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의 가정이 변화에 적응 할 수 있도록 가정이 건강한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만이 미래 사회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가정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할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정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혼율의 급증, 자녀 교육의 문제들, 우리 자녀들의 교육환경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학교폭력과 왕따, 청소년들의 탈선 등 이제는 초등학생들이 성경험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이런 모양으로 미래를 맞는다면 우리사회의 기초인 가정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 또한 건강한 사회는커녕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단순한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기초의 붕괴, 가정 해체로 인한 각종 문제, 건강치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드러내는 상처와 병든 마음으로 인한 악순환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까요?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은, 회복되어야 할 대상이 문제를 안고 있거나 건강하지 못하거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좋은 모습을, 본래의 좋은 건강을, 본래의 역할을 되찾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우리의 가정이 건강한가? 온전한가? 우리 가정은 가정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를 살펴야 할 것이며, 그리고 본래의 가정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가정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먼저 가정의 신앙 중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5장 31절 말씀 앞의 22-30절까지의 말씀부터 6장 4절까지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부부에게, 즉 남편과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어떤 모습과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신앙 중심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말씀 중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좋은 관계, 좋은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가정 자체의 유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가정안의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목적을 깨닫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 결과 이기주의적 가족주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의 출발과 목적, 가정의 역할과 사명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가정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는 가정의 모습과 역할을 되찾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 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와 사랑이 가정에 충만할 때 가정은 진정으로 회복이 이루어지고, 지속적인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십자가 사랑의 은혜와 능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도 부부들의 문제를 다룬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정교육에 관한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정의 문제, 부부의 문제, 가정교육의 문제를 많이 다루려고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프로그램이라도 보고 배우고 변하고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참 별의 별 유형의 가정 문제들이 다 등장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문제가 발생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며칠 전 KBS 프로그램 아침마당에는 시어머니의 상상을 초월한 며느리 괴롭힘, 억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막심한 자녀들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어떻게 저렇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으로서의,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내 팽개치고 사는 남편과 아내들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가정 안에서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가정 안에서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앞 절에서 사도 바울은 부부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관계에 비유하여 말씀했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주는 사랑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씀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냥 산다고 사랑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디트리히 본 훼퍼가 그의 여조카에게 보낸 결혼 축하 메시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란다. 결혼한 지금부터는 네 사랑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로 결혼임을 알아야 한다.” 무슨 뜻의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식으면 결혼을 깨고 헤어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제도, 그 결과 이루어진 부부관계, 부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가정은 사랑이 없으면 깨어지고 해체되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 때문에 더욱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부부가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가족이 되었으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출발이 다릅니다. 사랑이 감정만이 아니고, 사랑하는 의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결혼이고, 부부이고,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내요, 며느리요, 어머니인 여성은 가정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행복과 건강과 번창이 결정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나 골로새서에 가정에 대한 말씀을 보면, 첫 번째로 “아내들이여!”라고 말씀이 시작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존재요 역할이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은 성경 말씀에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또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말씀하니까, 무슨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아내를 구타하고 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용납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종이 아니므로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한 몸이 된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부부는 평등한 것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하나됨입니다.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고,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부부일수록 깨어지기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 몸에 손과 발이 평등하다고 해서 서로 하는 일, 역할을 똑같이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손과 발은 한 몸입니다. 우리 하나의 몸의 지체입니다. 손과 발은 평등할 수 없고, 한 몸을 위해 서로 돕고 봉사하고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손과 발은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의 관계를 모든 면에서 평등을 유지하려고 하면 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별하고,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부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부부의 질서는 상명하복, 수직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질서가 아니라 존중에서 나오는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가정 안에서 누가 제일이냐? 누가 가정의 중심이냐? 남편이 주도권을 잡았느냐? 아내가 주도권을 잡았느냐? 이런 씨름을 하고 있어야 합니까?
사랑하는 남편들이여, 좀 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좀 바뀌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실천하십시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좀 잘 하십시오. 처음부터 남편에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구요? 압니다. 남편들이 아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때에는 남편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같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상승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당신이 먼저 변해야 그 다음에 나도 변하겠다고 한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먼저 변화하기 시작하면 상대도 변화합니다.
교우 여러분, 가정의 중심인 부부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려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깨어지는 관계에서 믿고 소통하고 사랑으로 양육하고 사랑으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15-18세 청소년들에게 “너는 네 부모를 믿느냐?”라고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질문의 조사가 왜 있어야 하느냐는 강한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십대의 어린 자녀가 부모를 믿는 것이 당연한 데, 무슨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미국 청소년들이 72%가 부모를 믿는다고 응답했고, 우리나라 십대들은 55%만이 부모를 믿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십대들의 45%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애기입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지독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책임감은 몹시 희박합니다. 부모를 믿지 않으니 존경도 없고 사랑의 대화도 역시 결핍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효도는 더더욱 잘 할 리가 없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중학생 아들이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당황한 아버지의 대답이 뒤따랐습니다. “너 무슨 말 하려고 그래? 용돈이 떨어졌니?”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아들은 선생님이 과제를 주어서 별생각 없이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한 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 듣는 말이라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가정에서 사랑의 관계가 막혀 있고, 부부 사이의 관계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형제자매간의 관계도 사랑이 끊어져 버렸으니 어찌 그런 가정을 가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가정이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가정,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집에 엄마가 저녁에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들어오니까 아들을 꼭 안으면서 “아들아, 수고 많았지? 사랑한다.”라고 말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오늘 어디 세미나에 다녀오셨어요?” 그러더랍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세미나에만 갔다 오면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뭔가를 하시는데, 그게 오래 가지 않으니까 세미나 갔다가 올 때마다 겪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가정이 회복됩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에 위기가 닥쳐도 사랑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동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풀빵 엄마 이야기)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부모를 일찍 여읜 오누이가 이웃집 가정의 사랑을 받고 잘 자라난 것을 보고 천사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처럼, 엄마를 잃고도 이모와 이모부 집에 가서 진실한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는 오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 가정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미래 사회에 가정의 형태와 역할이 변한다고 해도 오직 사랑만은 변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사랑의 힘은 놀라운 것이며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제는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어제 하루 종일 자녀들을 위해 수고 많았습니다. 요즘은 어린이날에 자녀들에게 잘 못해주면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내일 모레 어버이날에는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물론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부모님들의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말입니다. 효자 집에 효자난다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고부 갈등만이 아니라 장서갈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장모와 사위와의 갈등입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에서는 고부 갈등이 있고, 장인장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에는 장모와 사위와의 갈등이 있습니다.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십계명 중의 사람을 향한 첫 번째 계명입니다. 그만큼 중요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통하여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는 첩경입니다.
교우 여러분, 완벽한 가정은 없습니다. 모든 가정이 언제나 건강한 가정, 온전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가정으로 회복되어, 여러분의 가정이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
2012년 05월 06일
신문수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