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으로 (스라랴 4장 1-6절) |
한 여자를 따르며 구애작전을 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여자가 그 남자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세요. 100일 동안 밤마다 집 앞으로 찾아와 주신다면 당신 뜻대로 결혼하겠어요.” 그날 밤부터 남자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99일째 되는 날은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남자는 변함없이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감동한 여자가 밖으로 나가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그 깊은 마음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 결혼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저~ 저는 아르바이트 학생인데요.” 기절할 일이지요? 그 여성에게 필요한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진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을 원했지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해서 사랑하는 척하는 남자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 좋은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천국에 가기까지 함께 해 주실 좋은 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 주실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린 사람들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 날을 기념하며 우리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기를 사모하는 주일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을까요? 성령님은 왜 우리에게 강림하셨을까요?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사람은 육과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영을 영과 혼으로 세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진흙덩어리였던 것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은 영이신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진흙덩어리인 것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 드디어 살아있는 생명체, 생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영은 아주 중요합니다. 또한 영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이 건강하고 왕성하여도 영에 문제가 있으면 마음과 몸이 건강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치유되어야 하고, 강건해져야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온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활기찹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님을 예수님께서는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변호사, 상담자, 인도자, 조력자, 위로자, 돕는 자를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 추악함과 어리석음을 돕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힘과 능력과 은사를 주시고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쳐있고 낙심해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스가랴 선자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게 주전 586년에 망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고레스 왕에 의해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에 성전은 파괴되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수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발과 방해 공작 때문에 성전재건과 성벽 수축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 동안 주신 말씀입니다. 스룹바벨과 백성들이 수고를 하였지만 15년간 공사는 진전이 없고 점점 난관만 거듭되고 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스룹바벨이 성전건축을 끝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말씀이면서도, 그 일이 완성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중요한 구절은 6절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은 성경 가운데 가장 위대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스룹바벨이 하고 있는 성전 재건은 참으로 미미하게 보였고, 비관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렵고 비관적인 상황을 해결하고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배의식이 빠져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희망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진전이 없었습니다. 자꾸만 문제가 생깁니다.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방해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대체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좋지?” 그러면서 그들은 지쳐있었습니다.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은 이런 뜻이 말씀입니다. “네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네 재능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네 머리로, 네 노력으로, 네 조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에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오늘 말씀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피곤하고 지쳐있는 사람들,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새로운 힘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디로부터 새 힘을 얻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힘으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힘이라는 것은 자신의 육체에서 나오는 힘도 있고, 권력의 힘, 돈의 힘, 자연의 힘, 과학의 힘, 지식의 힘 등 여러 가지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힘을 가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힘을 가지면 자신감을 갖습니다. 사람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설픈 자신감은 실수와 실패를 자초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또는 모든 힘을 다 동원하여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능력이라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 재능 등을 말합니다. 타고 난 재능, 성장하면서 기르고 훈련한 능력을 사용하여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힘과 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계획하고 꿈꾸는 대로 인생이 펼쳐지고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결심하면 결심대로 됩니까?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하면 모든 것이 다 의지대로 됩니까?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계획대로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뜻대로 다 이루어졌습니까? 여러분이 이렇게 되라, 저렇게 되라 하면 그대로 되었습니까? 몇 가지 있긴 있겠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밥을 먹습니다. 정상적으로 밥을 꼭꼭 씹어서 삼키면 소화가 됩니다. 그래서 배고픔도 해결하고, 영양도 공급받고,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먹은 밥이 모두 다 여러분의 몸속에서 소화가 잘 되고 영양분으로 잘 공급되었습니까? 더 쉽고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밥을 먹고 난 후에 소화가 안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밥을 먹고 체한 적은 없습니까? 밥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고 설사가 나서 먹는 족족 화장실에 가서 다 쏟아낸 적은 없습니까? 음식을 잘못 먹어 식중독이 걸린 적은 없습니까? 입맛에 문제가 생겨서 밥이 앞에 있는 대도 밥맛이 없고, 밥을 먹을 수 없었던 적은 없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 먹는 것조차도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내가 맘대로 못합니다. 또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 입안에 혀가 있지요? 혹시 혀가 없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혀를 한 번도 깨물지 않은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십시오. 밥을 먹다가, 말을 하다가,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 혀를 한 번도 깨물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몸 안에 있는 아주 작은 것. 소위 세치밖에 안 되는 혀 하나 조차도 우리 맘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습니까? 밥 먹는 것을 하루 세 번 씩 하면서 사는 데, 그깟 혀 하나 입안에서 잘못 다루어 이빨에 씹힌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만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은 제 뜻대로 다 이루면서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조차 온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잘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유한합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사람은 부족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도 안 되고, 능력으로도 안 되니 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힘도 쓰지 말고, 능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힘과 능력의 그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때 힘이 온전하여 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고, 온전한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6절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결코 미미하거나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날 과학 기술 발전을 보십시오. 인간의 학문 연구의 진보를 보십시오. 현대인들이 누리고 사는 문화문명을 보십시오. 한 가지 예로 휴대폰 스마트폰을 보십시오. 그것가지고 별것 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달된 기술, 기계, 문명이 항상 선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양날의 칼처럼 한쪽으로는 인간에게 편리와 유익을 주지만, 다른 면으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악한 일에 사용되며,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기술이나 도구로 전락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과 인도하심,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을 자기 뜻대로 사용할 때,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지고 있는 힘만 믿다가 큰 코를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할 때 자신이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에 밀려 보기 좋게 나가떨어집니다. 힘의 논리에 밀려 쓰디쓴 고통의 잔을 마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나침반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나침반 아시지요? 항상 바늘이 정북방향을 가리키도록 만들어져 있는 나침반은 항해할 때, 잘 모르는 산을 등반할 때, 사막을 횡단할 때 등 방향을 잃지 않고 방향을 찾는 데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나침반의 원리처럼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성령님께서 항상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이 성령님에게 붙잡힌바 되어 사용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충만히 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충만히 모시려면 구해야 합니다. 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간청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1절 이하에,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을 갈망하는 사람, 성령님을 사모하는 사람,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사람에게 성령님은 충만히 거하십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말했습니다. “인간은 깨진 그릇과 같으므로, 계속해서 물을 충만하게 담으려면 물이 쏟아지는 수돗물 아래 그 깨진 그릇을 갖다 놓은 방법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이 말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와 어떻게 성령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평소에 물을 충분히 저장하고 있어서 오랜 가뭄을 견딜 수 있는 저수지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한번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해서 그 충만함이 계속 지속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물이 새는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계속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금방 그 충만함이 사라져서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적인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뷔폐에 가서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고 해서 일주일간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 기름 탱크에 기름을 가득 넣었다고 차를 운행하고 다니면서 다시 기름을 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 깨끗하게 세탁한 옷이라고 해서 입고 다니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우 여러분, 오직 성령 충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온전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붙잡고 강하게 하시고 도와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보다 높고, 우리 위에 있는 능력을 주시는 능력자이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바른 마음의 자세와 태도는 언제나 우리의 무력함과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깊은 자각 자체여야 합니다.
인간은 무르고 약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며 불가능한 것이 없으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 말씀에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삶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력으로도 안 되고 오직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힘으로, 내 재능으로, 내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과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다음 주 초청하실 분을 초청해야 합니다.
지난 번 일본 재일대한기독교회 관서지방회 아슈람기도수양회에 참석했을 때, 수양회의 주 강사 목사님으로부터 좋은 표어가 담긴 인사말을 배워왔습니다. 지난주 오후찬양예배시에는 참석한 교우들과 함께 해 보았습니다. 같이 따라해 보시겠습니다.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예수님처럼 신나게! 예수님처럼 멋지게! 예수님처럼 져주면서 삽시다!” 이 구호의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멋지게, 신나게, 져주면서 삽시다!’의 첫 글자를 따서 모아 보면 “당 · 신 · 멋 · 져!”입니다. 옆 사람에게 “당신멋져”라고 말하면서 인사해 봅시다. 이번에는 앞뒤 사람과 손바닥을 부딪쳐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해 봅시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예수님처럼 신나게, 예수님처럼 멋지게, 예수님처럼 져주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닮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잘 됩니까? 쉽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힘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김춘경 시인의 시 [삶이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 있는 곳이 황무지라 하여도 / 내가 실망하지 않음은 /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내 비록 저주받은 땅에 머물지라도 /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음은 /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무런 생명을 느낄 수 없는 / 이 땅에서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 당신이 나의 삶을 인도하고 / 당신이 나의 손을 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 당신은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 신실한 분입니다. / 나의 기업을 잇게 하시고 / 나로 이 땅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 나의 생명을 지키시고 / 나로 호흡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 언제라도 당신이 부르시면 / 내 하던 일을 그냥 다 멈추고 / 당신에게로 가야 하는 난 / 당신의 피조물입니다. /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소서. / 그래서 나의 나된 것을 알게 하시고 /나의 근원을 깨닫게 하소서. // 당신이 나를 부르시는 그날 / 기쁨으로 당신을 만날 /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도우소서. / 저주받은 이 땅이 아니라 / 당신과 영원히 거할 처소. / 그날을 위하여 오늘 / 하루를 살게 도우소서. / 그래서 날마다 나의 하루가 / 당신으로 인하여 천국이 되게 하소서.”
여러분, 목표한 바가 잘 되지 않아 피곤하고 지쳐있습니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힘과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성령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성령님을 믿고 의지 하십시오. 성령 충만하십시오.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으십시오. 성령님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며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인격적으로 성령님과 교제하며, 신령한 세계를 경험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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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7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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