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짐의 은혜 (출애굽기 3장 1~8절) |
중국의 고사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악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남자가 속임수를 써서 중국 왕실의 악단 단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연습할 때나 연주할 때 연주하는 시늉만 했습니다. 나라에서 녹을 받고, 갈채도 받고, 살림도 늘어나고, 모든 것이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황제가 “연주를 협주가 아닌 독주로 들어보고 싶다”고 하여 이 악사가 연주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짜 악사는 아프다고, 바쁘다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자기 차례 되기 전날에 고민을 했습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길은 없고, 황실에 가 임금 앞에서 연주하면 틀림없이 죽임을 당할 것 같아서 그만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문제를 만납니다. 장애물을 만납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만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결과일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나에게까지 닥쳐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후회만 하고,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느냐? 문제가 생긴 그 다음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여 자신의 삶을 성장, 성숙하게 하느냐? 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도 실수하고 실패하고 고난과 시련을 다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그것을 자기를 변화시키고 발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실패한 인생으로 끝난 사람은 실수하고 실패하고 고난과 시련을 만났을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여 그냥 포기했기 때문에 자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도 실수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본문 출애굽이 3장 1절 이하의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고 사명을 받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이집트 땅에서 점점 번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견제하려는 바로 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바로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이 해산할 때 사내아이를 낳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산파들이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 사내아이를 살렸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태어났고, 집에서 몰래 기르다가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집 밖으로 들리게 되니까, 계속 키울 수가 없어서 모세의 부모가 갈대상자를 만들어 모세를 그 안에 넣고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띄워 놓았습니다.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을 왔다가 갈대상자 안의 모세를 발견하고 궁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아들로 키웁니다. 이 공주의 이름은 핫셉수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중에 핫셉수트는 23년 간 긴 섭정으로 이집트 역사 가운데 가장 유능하고 대담한 통치로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 공주에게 발견된 모세는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가 40년간 궁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합니다. 모세는 당시 최고의 문화, 최고의 학문, 최고의 군사훈련, 최고의 리더십을 교육받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모세가 40세가 된 어느 날, 궁궐 밖에 나갔다가 이집트 사람이 모세의 동족 히브리인을 치는 것을 보고 그들 쳐 죽여서 모래 속에 감추어버렸습니다. 모세의 몸속에는 히브리인의 피가 흘렀습니다. 동족의 고통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갓난아이 시절 어머니의 품속에서 젖을 먹었고, 바로 공주에 의해 궁궐로 들어간 다음에도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가 되어 젖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머니 품속에서 어머니로부터 신앙교육, 민족교육을 받았겠지요.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서 살면서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동족의 고통과 고역을 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동족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족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 맞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일이 들통이 나서 모세는 더 이상 궁궐에 있지 못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하여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양 떼를 치면서 평범한 가장으로 40년을 살았습니다. 미디안 광야 생활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무척 견디기 힘든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이집트 궁궐에서 부드러운 침대와 최고의 음식, 최고급 생활을 하던 모세가 풀을 찾아 양을 끌고 광야로 나갔다가 때로는 밤이슬을 맞으면서 밖에서 자야 했고, 거친 음식과 광야의 들짐승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궁궐의 많은 사람들, 시종들, 호령 호위하던 군사들은 곁에 아무도 없고, 광야에서 혼자 버려진 듯 철저히 고독해야 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은 깨어지는 시기였습니다. 모세는 철저히 깨어지고 또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가슴 속에 동족을 향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다 깨어져버렸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생활 40년 동안 다 내려놓았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믿고 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한참 잘 나갈 때의 그 언변과 리더십과 능력이 이제는 양 떼들과 어울리면서 다 무디어졌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려고 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열정과 자신감이 다 깨어졌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모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궁궐에 살면서 잘나가던 모세가 광야에서 양이나 치는 인생으로 곤두박질 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그렇게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일부러 모세를 그렇게 깨뜨렸습니다. 모세를 깨어지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다 깨어졌을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 모세를 호렙산에서 만나십니다. 그 사건이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입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이끌고 광야 서쪽으로 가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렀는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이상하게 나무는 그대로 있고 불이 계속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세가 “어찌하여 떨기나무가 타지 않지?” 그러면서 보려고 가까이 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 하시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셨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시겠다고, 그 일을 위해 모세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0년 전, 모세가 자기 스스로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믿고,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자신감에 차 있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 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이런 사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깨어진 모세, 다 내려놓은 모세, 자신을 비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는 지난 8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동족을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건과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살아온 세월을 통해 깨어지면서 깨달은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것,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피조물인 인간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생명을 주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각 사람의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각 사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뜻을 세워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서 세상을 살게 하신 계획에 어긋나면 잘못 산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어기면서 살려고 하면 인생이 자꾸 꼬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능력과 자기 방법으로 살려고 할 때, 그 결과가 허무합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 것 같아도 오래지 않아 무너져 버립니다. 손으로 바람을 움켜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사람을 인도하시기 위해 사람을 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 그를 깨어지게 하시어 그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십니다. 모세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세로 하여금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동족을 구하는 일이 자기 열정과 자기 능력을 의지하는 자신감과 동족을 사랑하는 가슴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러 온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 말씀은 모세가 가까이 간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이니 거룩한 곳이며, 그러니 신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신고 있던 신은 어떤 신이며, 신을 벗으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모세가 신고 있던 신은 샌들입니다 가죽으로 엮은 이 샌들은 모든 신이 그렇듯이 걸을 때 발바닥을 보호합니다. 또 밤에는 사막의 날씨가 춥고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니까 찬 이슬이나 동상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고, 낮에는 뜨거운 모래를 맨발로 밟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까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습니다. 그런데 그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면서 모세에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신발이 너의 발을 보호하고, 신발이 너의 걸음에 도움을 주고, 그 신발을 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 갔겠지만, 그 신을 벗어라! 그 신발이 너를 보호하고, 그 신발이 너를 걷게 하고, 그 신발이 너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공부를 하고 지식이 조금 있으면 그것 때문에 앞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면 건강하니까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돈이 있고 재산이 있으면 그것 가지고 앞으로 잘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권력을 거머쥐면 그 힘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젊은 사람은 자신이 아직 젊기 때문에, 재주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재주 때문에, 머리 좋은 사람은 좋은 머리로, 수단이 좋고 처세술이 좋은 사람은 수단과 처세술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인생을 잘 살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모세에게 하신 말씀처럼, 우리들에게도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입고 있는 것, 너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너를 안전하게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너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 같은 것, 그것을 벗으라, 그것을 내려놓으라, 그것을 깨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샌들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도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 안에서 힘자랑, 돈 자랑, 명예 자랑, 감투 자랑, 사회적 지위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직 신발을 벗지 못한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깨어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깨어지게 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깨어지기 전 스스로 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때,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을 만날 때, 다 내려놓고, 손에 움켜쥔 것 다 펴고, 걸친 것 다 벗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어진 것 다 깨어지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한 번만 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 깨어졌습니다. 어부로써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은 허탕 친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의 말씀 따라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배에 가득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베드로는 깨어졌습니다. 물고기 잡는 것이 갈릴리 바다의 어부 생활의 경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늘의 능력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의 결정적인 깨어짐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사건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기 전, 대제사장 하속과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잡히시면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다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얼마 안 있어 그 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잡히셨고, 그 다음 날 새벽에 닭이 울기 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대한 커다란 실망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런 깨어짐을 통해서 모세와 똑같은 깨달음과 삶의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 강림하심을 통해 성령 하나님을 믿고 모시고 의지하면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이 있은 후,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핍박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의 잘못된 열심을 하나님께서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갈 때였습니다. 길 위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 사울은 깨졌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울의 회심이라고 합니다.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메시야이심을 믿게 되었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이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깨어짐이란 이런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회개와 변화의 과정입니다. 부패한 자기 사랑과 자기 의를 죽이는 과정입니다. 옛 본성을 죽이고, 옛 모습을 깨뜨리고, 옛 삶을 끊어버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자기 욕심, 교만, 자기 자랑, 하나님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깨어지게 하십니다. 자존심이 깨어지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믿게 하십니다.
깨어짐이란 깨뜨리는 것입니다. 보석을 얻기 위해서는 원석을 캐어낸 다음 보석 아닌 다른 것은 깨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원석을 갈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시중에서 판매되는 다이아몬드나 에머럴드, 루비, 사파이어와 같은 보석이 그 모양 그대로 광석 속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원석을 캐낸 다음 잘라내고 다듬고 빛나는 보석으로 가공한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자기중심의 사랑을 깨뜨리고, 자기 고집을 깨뜨리고 교만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을 찌르고 괴롭히는 뾰족한 것들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벗는 것입니다. 거짓과 위선의 옷을 벗고, 세상의 가치관을 벗고, 과거의 잘못된 습관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신고 다니던 세상의 신을 벗는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버리는 것입니다. 헛된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우리를 묶어버리는 것, 우리를 부패하게 하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힘을 빼는 것입니다. 목에 힘을 빼고 목소리에 힘을 빼고,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힘을 빼지 않고 발버둥 치며 허우적거리면 물속 더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힘을 빼면 수영을 못해도 물위로 떠오릅니다. 깨어짐이란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재로 사용될 나무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가 줄기가 굽어지지 않고 곧게 굵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가지가 많으면 나무의 줄기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일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치기를 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깨어짐이란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복음송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 내 주되신 주앞에 나가 /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 주님만 사랑해”
그래서 깨어짐이란 다시 만들고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깨어짐이란 온전케 되는 과정입니다. 깨어진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깨어진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고, 깨어진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여 온전케 됩니다. 깨어짐 없이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 6월 8일자 국민일보 미션란 27면에는 가수 자두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아마도 젊은 교인들이나 알고 있는 가수일 것입니다. “김밥” “대화가 필요해” 등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가, 지난 4년 동안 공백기를 겪었습니다. 그 기간 중에 사기를 당해서 그동안 벌었던 돈을 날렸고, 증인으로 법정에 서야만 했고, 자금 압박으로 아끼던 차까지 팔았다고 합니다. 마치 4년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생활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신을 혹독하게 연단시키셨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신곡 앨범을 발표하면서 타이틀 곡 “1인분”이라는 노래는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처럼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가수지만, 그가 4년 동안의 공백기에 겪는 일들을 통해 깨어짐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위인들이나 우리들의 인생의 선배,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본받을 만한 삶을 산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깨어지는 시기에 잘 깨어지고 잘 회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깨어짐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깨어지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고 하고, 때로는 질병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하게도 하시고 실패하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깨어질 수 있도록 일이 꼬이게도 하시고, 문제를 만나고 장애물을 만나게도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자존심 상하기도 합니다.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어진 후에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게 되면 그 깨어짐의 사건과 시간들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는 은혜의 손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변화와 성숙이 이루어지지만, 깨어지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사람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앙이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신령한 경험을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동네 냇가에서 개 헤엄치는 것을 배운 사람이 수영선수가 되려고 하면서 개 헤엄치는 것을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깨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다메섹 도상에서 깨어짐의 은혜를 경험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했습니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깨뜨린다는 고백입니다. 스스로 깨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고, 가지치기하고,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주님의 능력이 더욱 온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라고 하는 말에는 깨어짐이 동반됩니다. 자존심과 고집과 자기 생각이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깨어져야 은혜가 들어가는 데, 깨어지지 않은 딱딱한 것 때문에 튕겨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뽑습니다. 뽑힐 수 있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에 합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양심에 통과해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는가,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가족을 다 빠짐없이 구원했는가, 또 사회적으로 어떤 부끄러움이나 허물은 없는가, 가정을 잘 다스리고 있는가, 착하고 충성스러운가, 이런 것들에 대해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도들로부터 장로는 3분의 2이상, 안수집사, 권사는 2분의 1이상 표를 받아야 합니다.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나는 이번에 꼭 될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누구는 됐는데 나는 이러이러하게 봉사도 하고, 교회도 오래 다녔는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만약 기대했지만 안 되는 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깨어지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나에게는 하나님께 항존직분자로 세움 받기에는 내가 모르는 깨어져야 할 것이 더 있나 보구나...”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나 보다...” “아직도 내게 비워야 할 것이 남아있나 보다...”하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깨어지기를 멈춘 사람, 교만하고, 자기 고집을 피우고, 자기 방법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사람,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깨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또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깨어지고 또 다듬어지고, 또 깨어지고 새로워지고 온전해져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깨어짐은 은혜입니다. 모세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깨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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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10일
신문수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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