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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은 없습니다.  [3138]
· 설교 일자 : 2012년 07월 15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2장 35-40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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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5-40절)
눅123540  지름길이 없습니다.
2012. 7. 15 주일낮예배설교

  여러분, 명절에 귀성차량들로 붐비어 차가 마냥 막힐 때, 어느 곳에 사고가 나서 차가 막히고, 어느 구간이 어떻게 막히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좀 덜 답답합니다. 그런데 차가 앞으로 가지도 않고 마냥 막히는 데 왜 막히는 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막힌 것이 좀 풀리고 있는지를 모르고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속이 터집니다. 알고 겪는 일과 모르고 겪는 일은 겪는 사람에게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픈 것도 그렇습니다. 몸에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생겨서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아픈 것과 몸에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생겨서 고통스러운지를 모르고 아픈 것은 다릅니다. 마음부터 답답하여 고통을 느끼는 체감이 더 큽니다.
  또한 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인생은 그냥 달콤하고 쉽고 웃을 일만 있는 것이라고 알고 사는 것은 다릅니다. 인생은 고해, 즉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인생을 살면,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과 고난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생은 고해와 같으니 참아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냥 나 혼자만 고통이 있고, 나 혼자만 고난을 겪고, 내 인생만 힘들다고 느끼고 살아가면 고통과 고난이 더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신앙이 바르게 자라고, 신앙생활에 장애물을 만날 때에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곧 바로 인생이 탄탄대로, 만사형통, 인생대박, 고속승진, 사업번창, 소원성취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고해와 같은 인생에서 만나는 고통과 고난과 위기를 신앙으로 하나님과 함께 이겨내고 극복해 나가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교회만 나오면 신앙이 자랄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1년, 2년, 해수를 거듭하면서 ‘왜 나는 믿음이 안 생기지?’ ‘왜 내 신앙은 자라지 않지?’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에 의심을 갖고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성으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빨리 해결되고 빨리 이루어지고, 쉽게 해결되고 쉽게 이루어지고, 내 생각과 계획대로 해결되고 이루어져야 지름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과정과 방법과 길이 지름길입니다. 가장 빠른 길입니다. 가장 맞는 길입니다. 그것을 못 받아들인다면 점점 더 멀어지고, 늦어지고, 힘들어집니다. 지름길이 없다고 알고 걸어가는 신앙생활의 길이 지름길입니다. 그렇지 않고 뭔가 지름길을 찾아보려고 애쓰게 되면 거기에서 시간이 걸리고 겪어야 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오히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로 가라고 합니다. 좁은 길은 그야말로 좁고 협착하고 쉽지 않은 길입니다. 넓은 길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길로 가려고 하지만 그 길을 통하여 들어가는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고 말씀합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 14절 말씀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지름길은 없습니다. 이 말은 구원을 받는 방법이 어렵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곧 바로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곧 바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부로 자살해서도 안 되고, 그냥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야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과 과정이 지름길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어 금방 무슨 일이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게 하시고 열달 동안 배속에 품고 자라게 하시고, 탄생하게 하시고, 30년 동안 성장하여 가정을 책임지고 살게 하시다가 공생애를 살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구원을 이루는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통의 길이고, 희생의 길입니다. 물론 우리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복음이요, 은혜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후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신앙생활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단번에 받았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로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빨리 쉽게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에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에 어른여름성경학교 강사와 함께 교역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교회 근처 아구찜을 하는 식당에 갔습니다. 저희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갔는데, 먼저 식당에 와 있는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음식이 먼저 나오니까 먼저 온 사람들 중 웬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여 식당 사장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왜 자기들이 먼저 왔는데 음식이 빨리 안 나오고 저기가 먼저 나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식당 종업원이 우리 쪽은 예약한 손님이라고 설명을 하는 데도 막무간에 자기네가 먼저 왔으니까 빨리 나와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몰상식한 한 성질 아저씨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음식을 다 먹고 나올 때까지 보니까 급하게 음식을 먹고 어디에 갈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앉아서 결국 소주 마시고 있을 거면서 그랬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약한 음식을 먼저 받아먹으면서 마치 뭘 잘못한 것처럼 여겨지고, 속으로는 그 아저씨한테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못 기다려서 그렇게 화를 내고 소주를 마시면 소주 맛이 더 좋을까요? 아구찜에 인생을 건 그 아저씨의 입속에서 씹히는 아구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면, 그렇게 화내고 못 견디고 열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대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박 났으면 좋겠다.’ ‘대박 터지다’는 말을 합니다. 한 방에 큰돈을 벌어 자신의 인생이 역전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일이 한 방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순식간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겉절이를 담는 것이 아니라 김장 김치를 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금방 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숙성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숙성되기 위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를 뛰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100미터만 달리면 끝나는 경기가 아니라 마라톤 경기처럼 오랜 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경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라면을 끓여 먹기에는 4,5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곰국을 끓여 먹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국솥 안에 소뼈를 집어넣고 오랜 시간을 끓이며 기다려야 합니다. 푹 끓이면서 기름기가 위로 솟아오르면 그것을 걷어내고 또 계속 끓여야 합니다. 그래서 곰탕집에는 ‘24시간 가마솥에 끓인 곰탕’이라느니,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였다’느니 사진까지 크게 붙여놓고 홍보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뼈 속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린다고 하면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우리의 시간 개념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원하신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루 24시간, 1시간 60분, 1분 60초를 살아갑니다. 시간에 제약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해 하고, 초조해 하고, 서두르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간 개념에 의해 일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건 중심, 의미 중심, 내용 중심의 시간을 사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때가 차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차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야 일이 일어납니다.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기다릴 줄 알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을, 믿음의 내용을 믿기 때문에 금방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상대를 믿는다고 하면서 기다릴 줄 모른다면 진심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자세에서 더욱 빛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응답되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시간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 앞에 겸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을 믿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다릴 때,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는 기도입니다. 또한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은 끝까지 기다릴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또한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은 믿음의 최선의 표현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쉽게 빠르게 이루어지기만 기대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에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 없이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인내 없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인내 없이 크고 깊고 오묘한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인내 없이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어머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자라야 하고, 산모는 10달을 기다리며 조심하며 참고 견디어 내야 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나서 열매를 기다리면서 땀을 흘리는 일을 하면서 참고 수고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7,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나무는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닥쳐와도 참고 견디어 내는 인내를 통하여 뿌리가 땅으로 더 깊게 박히고 그 결과 더 강하고 큰 나무가 되어 갑니다. 참고 견디는 것은 버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사람이 되어 갑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느냐? 입니다. 신앙생활은 문제만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 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는 [영성훈련]이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순간적인 노력의 힘만을 너무 강하게 믿으면 안 되고, 우리의 삶의 전체에서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 참고 견디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참고 견디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만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고 견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사들이 훈련을 참고 견디어내지 않으면 전쟁에 나가 생명을 잃고 패전합니다. 운동선수가 연습과 훈련을 참고 견디어내지 않으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듯이 신앙인은 연습과 훈련을 참고 견디어 내야 합니다. 경건의 연습과 경건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닮아갈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참고 견디어 내는 신앙으로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고, 변화와 성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름이 되면 예배시간에 에어컨 켜는 것 때문에 예배에 은혜가 안 될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위를 많이 타고, 어떤 사람은 더위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에어컨 바람을 너무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에어컨 바람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은 예배실 안이 더우면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가 없으니까 에어컨 바람에 민감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교회에 올 때, 긴 옷을 하나 가지고 와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춥게 느껴지면 입으면 좋겠다는 광고를 합니다. 그런데도 전혀 그런 준비를 해 오지 않고서 그리고 에어컨 바람이 정면으로 가는 방향과 위치에 앉아서 추운데 왜 에어컨을 꺼지 않느냐고 얼굴을 찌푸리며 원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은 나는 더위를 잘 타니 나한테 맞추어 달라고 주장하는 자세여서는 안 됩니다. 더위를 잘 타는 사람에게 맞추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춥고, 에어컨 바람에 민감한 사람은 에어컨 바람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설교 시간에도 에어컨 소리에 설교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위를 잘 타는 사람도 더운 것을 참으려고 해야 합니다. 나는 몸에 열이 많으니 못 참는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서로 참고 견디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참고 견디는 연습과 훈련을 하면 또 거기에 적응이 됩니다. 그러나 못 참고 못 견디기 시작하면 계속 못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는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 대해 참고 견딜 줄 알아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해 참고 견디어 줄 때 부부의 사랑과 행복이 무르익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부부는 매일 싸웁니다. 매일 원수가 됩니다. 매일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해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참고 견딜 줄 아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려면 고통과 고난과 역경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역경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겨낼 것을 믿기 때문에 참고 견딥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에 참고 견딥니다. 반드시 변화될 것을 믿기 때문에 참고 견딥니다.
  교우 여러분, 성경의 인물들은, 우리들의 신앙의 선배들은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승리했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내어 하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지름길이 없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잠들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잠들지 않으려면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잠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잠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편 13장 3절 말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사망의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설교 시간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설교를 듣습니다. 깨어있는 사람과 사망의 잠을 자는 사람과 비몽사몽간에 있는 사람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좋은 땅처럼 말씀이 마음의 밭에 떨어지면 아멘으로 받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의 은혜가 있고, 감동이 있고, 결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의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깨달음의 은혜! 없습니다. 감동! 없습니다. 결단! 없습니다. 오직 잠만 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있는 사람은 예배를 마치고 왜 조느냐고 물으면 안 졸았다고 말합니다. 다 들었다고 말합니다. 설교 내용을 다 안다고 말합니다. 물론 다 듣지는 못했어도 들었다 못 들었다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몽사몽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냥 듣고 아는 것이 설교를 듣는 자세가 아닙니다. 비몽사몽에는 깨달음의 은혜가 없습니다. 감동도 없습니다. 결단은 더더욱 없습니다. 다만 비몽사몽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혀지고, 영의 눈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깨어있는 것을, 35절 말씀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으로, 36절 말씀에는, 주인이 돌아올 때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것으로 말합니다. 40절 말씀에는,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기 위해 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을 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는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열 처녀 중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는 등을 가지고 나갈 때 신랑이 늦게 올 것을 준비하여 기름을 더 가지고 나갔습니다. 또 다섯 명의 미련한 처녀들은 그냥 등만 달랑 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신랑들이 늦게 오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랑이 늦게 왔을 때, 미련한 처녀들의 등에는 기름이 다 떨어져 더 이상 등불을 밝힐 수가 없었고, 슬기로운 처녀들의 등도 기름이 다 떨어졌지만 준비해 간 기름이 있었으니 등불을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가 왜 슬기로운 처녀라고 일컬어지느냐 하면, 그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럴 경우를 대비하여 기름을 더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고 신앙생활에 적용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깨어 있어 준비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항상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깨어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 봉사도 하고, 저 봉사도 하고, 이 모임에도 나가고 저 모임에도 나가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고, 항상 준비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분주합니다. 그러나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은 적군이 오는지 안 오는지를 깨어 있으면서 잘 지켜보고 파악하고 성 안에다 알려주어야 하는데, 깨어있기는 한데 다른 일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적군을 지켜보지도 않고 적군의 움직임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깨어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깨어있으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종이 깨어 있으면서 주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깨어있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기다리면서 참고 견디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피곤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너무나 피곤하여 깨어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도, 영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도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너무 분주하면 깨어있을 수 없습니다. 또 과거에 자꾸 집착하면 깨어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좋지 않은 옛 습관도 우리를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도 우리를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상처나 쓴 뿌리도 우리를 깨어있는 못하도록 하는 방해물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서두르지 맙시다. 서둘러서 잘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서둘다가는 항상 중요한 것을 빠뜨리거나 놓치기 때문입니다. 서두르지 말하는 뜻은 게을러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주하다고 해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문제가 생길 때, 고난을 당할 때, 위기를 만날 때, 원수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거나 위협하거나 공격할 때, 이단이 미혹할 때를 대비하여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어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고, 참고 견디어 내고,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우리에게 사랑과 선한 것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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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사람을 찾습니다
· 일시  2012년 08월 19일
· 말씀  사도행전 11장 22~26절
· 설교  이동훈 목사
   
주일예배 설교
 희망으로 사는 사람
· 일시  2012년 08월 12일
· 말씀  마가복음 4장 10-2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하나님의 심판
· 일시  2012년 08월 05일
· 말씀  시편 7편 8-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영적 다이어트
· 일시  2012년 07월 22일
· 말씀  디모데전서 6장 3-1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잃어버린 우산
· 일시  2012년 07월 02일
·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지름길은 없습니다.
· 일시  2012년 07월 15일
· 말씀  누가복음 12장 35-40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강을 건너는 삶
· 일시  2012년 07월 08일
· 말씀  여호수아 24장 14-18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안디옥 교회처럼
· 일시  2012년 07월 01일
· 말씀  사도행전 13장 1-3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광야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24일
· 말씀  신명기 8장 2~6절
· 설교  장시옥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달음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7일
· 말씀  마태복음 13장 10-17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깨어짐의 은혜
· 일시  2012년 06월 10일
· 말씀  출애굽기 3장 1~8절
· 설교  신문수 담임목사
   
주일예배 설교
 퀴즈 인생
· 일시  2012년 06월 03일
· 말씀  요한복음 3장 1-15절
· 설교  신문수 목사
   
주일예배 설교
 오직 성령으로
· 일시  2012년 05월 27일
· 말씀  스라랴 4장 1-6절
· 설교  신문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