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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교회 홈페이지와 YouTube 채널을 통하여 설교말씀과 강의를 영상/음성/스트리밍으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2004년 8월 부터, 현재까지의 영상과 말씀 음원파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이 가능하며,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설교말씀 다시보기를 통해, 예배시간에 받았던 은사와 감동을 다시한번 회고하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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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은 자여  [3877]
· 설교 일자 : 2012년 12월 23일
·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장 26-38절
· 설교 :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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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은 자여 (누가복음 1장 26-38절)
  우리나라 속담 중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벌린 일에 대해 변명하고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할 때에 상대를 비꼬는 이 속담들은 모든 일에는 사연이 있다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처녀 마리아가 애를 낳았는데 어떻게 처녀인 마리아가 애를 잉태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많은 비 기독교인들이 비판하고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중요한 메시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구약에서는 다니엘에게 나타나서 종말에 대한 예언을 전해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같은 마을에 사는 목수 요셉과 약혼한 시골 처녀입니다. 요셉은 다윗 왕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유대 지역의 예루살렘이나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살지 못하고 팔레스타인 북쪽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목수 요셉과의 약혼과 결혼이란 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마을 주민이 가족처럼 지내왔던 상황 속에서, 마리아에게 같은 동네의 요셉과의 결혼이란 신비하거나 큰 기대를 걸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임하여 “은혜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마리아에게 ‘은혜 받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무슨 은혜를 받았다는 말일까요? 그 은혜에 대해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마라아에게 임한 은혜는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여 낳는 일입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34절에 보면,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천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상상을 해 보십시오.
  필립 얀시가 쓴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라는 책에 말콤 머거리지의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산부인과 병원들이 널려 있어서 가족의 명예를 더럽힐 ‘실수들’을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요즘 세상 같으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예수님이 태어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밴 마리아의 경우 십중팔구 낙태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고, 게다가 그녀가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잉태되었노라고 얘기한다면 부모들은 필시 불쌍한 딸을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받게 할 것이고, 미친 딸의 뱃속에 든 아이를 더더욱 기를 쓰고 떼어 주려 할 것이고, 따라서 어느 시대보다도 한층 구세주의 필요성이 절실한 우리 시대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배려 탓에 오히려 그 구세주 아기의 출산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는 요즘 처녀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주는 소식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후 대답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감수해야 할 개인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구세주가 사람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그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어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을 동정녀탄생이라고 말합니다. 이 동정녀탄생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사건으로 우리 기독교 교회를 세워주는 가장 중요한 교리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동정녀 탄생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을 통해 인간에게 전가되어 있는 죄성을 지니지 않는 분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은 인간의 죄의 흔적이 전혀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예수님은 분명 사람의 아들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태초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면서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이란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고 믿는 신앙은 아주 중요한 신앙교리입니다. 이것을 못 믿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못 믿고, 십자가 위에서 인간을 대속하여 죽으신 것도 못 믿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죄인인 사람이 무슨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을 전도하는 어떤 부인이 하루는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 남편이 교회를 나올 사람이 아닌데,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나왔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본문은 바로 오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인을 실망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의사인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왔는데 동정녀 탄생을 설교하실까?”하며 걱정하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설교를 들을 리가 없기에 부인은 낙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후에 남편이 이제 교회를 다니게 되었으니,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자고 목사님의 방으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부인은 얼떨결에 남편을 인도하여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겠다고 갔습니다. 남편이 말을 합니다. “목사님의 오늘 설교 잘 들었습니다. 제가 생물학을 하면서 의사가 되었는데, 개구리의 알을 가지고 전기 충격을 주어서 처녀 생식하여 개구리를 부화시킨 적이 있는데,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마리아를 감싸시고, 덮으셔서 임신하게 하셨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는 능히 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사람도 전기 충격을 주어 처녀 생식을 할 수 있는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게 하시는 일을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를 감싸 안고, 그를 덮으시므로 임신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리아는 젊고 평범하고 가난한 여성이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만 해도 여섯 명의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로마에 살던 한 성도 마리아(롬 16:6) 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 구약 성경에 나오는 미리암, 모세의 누나도 같은 이름입니다. 미리암의 아람어 마리암의 헬라식 이름이 마리아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이름이 마리아입니다. 그 뜻은 ‘사랑받는’ ‘높여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가난하고 혈통적으로도 특이한 것이 없는 여성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중요한 사명을 맞길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기에는 조건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세울 것이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고, 아무 것도 주장할 말이 없고,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에게, 좌절할 데로 좌절하고, 절망할 데로 절망하여 하나님이 아니면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여 갈망하는 사람에게, 오직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은혜의 힘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약하고 가난한 곳에 임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구하지도 않고,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능력이나 수단, 운수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 순종을 보시고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능력, 경험, 교육적 수준을 볼 때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후보자로 선택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여러분 스스로 제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여러분을 하나님의 귀한 역사에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 선의입니다. 신학적으로 구분할 때,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와 특별한 은혜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는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햇빛과 공기와 비와 눈과 자연이 주는 모든 선물들 등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모두가 받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는 각 개인에게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은 자외선과 적외선 그리고 그 안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 색상이 있는 것처럼, 어떤 각도에서 받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은혜를 깨닫고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달콤한 은혜가 있는가 하면, 쓰디쓴 은혜가 있고, 부드러운 은혜가 있는가 하면, 강하고 거친 은혜도 있습니다. 가시 같은 은혜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몸에 가시처럼 찌르는 듯한 안질이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가시와 같이 찌르는 질병을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고 신령한 체험을 한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셨다고 깨달았습니다. 가시 같이 찌르는 병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지해야 하는 존재인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가시 같은 은혜입니다.
  이슬 같은 은혜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작은 물 입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여 영롱한 이슬방울이 되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난의 은혜도 있습니다.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혜가 있는가 하면,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주시는 은혜, 고난 속에서 고난의 의미를 깨닫는 은혜, 고난을 통하여 변화되고 성숙해지도록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마치 김장을 담그는 것과 같은 은혜입니다. 김장을 담굴 때 어떻게 합니까?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 생강, 마늘, 무채, 온갖 양념을 버무려 넣습니다. 배추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효되고 숙성되어 맛있는 세계적인 건강 발효식품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어떤 면에서 보면 김장 담구는 것 같은 은혜입니다. 마리에게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들이 많이 섞여있는 은혜입니다. 마리아에게 베푸신 그의 복,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은 숱한 고통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를 조롱할 수도 있고, 그의 약혼자는 그녀를 떠날지도 모를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잉태 된 후에 마리아의 몸은 무거워오고, 출산할 때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기 위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야만 했습니다. 베들레헴에 거할 곳이 없어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애굽으로 피신을 갔다가 나사렛에 돌아와 이름 없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커서는 30세에 어머니 품을 떠나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의 삶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을 통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것이 바로 여러 세대를 거쳐 오면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끝은 영광입니다. 구원의 성취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는 은혜입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내가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교우 여러분, 마리아가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다양하고 오묘한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케 하시고 낳게 하신다면 마리아가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리아의 신세를 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했을까요? 마리아가 하나님의 사역에 선택된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없으면 하나님이 이 일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고맙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허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쓰임 받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마리아가 선택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에 동역자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을 사람이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 뜻을 더 깊이 새겨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마리아가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마리아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선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만 던져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분이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가 받게 될 특권과 의무를 통해 도움을 주실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은혜를 받는 경험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고 감사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응답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임합니다. 여러분, 요즘 건강에 관한 연구 결과 내용이나 강의를 들어보면, 햇볕을 하루에 얼마나 쬐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비타민 D는 햇볕을 쬐면 가장 쉽게 합성이 되어 우리 몸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햇볕은 쬐지 않아 우리 몸에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우울증, 소아 당뇨병, 결핵, 대장암에 걸릴 수 있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건강에 중요한 햇볕을 하나님께서 매일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서 햇볕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인 은혜를 베풀어도 집 안에 웅크리고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햇볕의 은혜를 충분히 받을 수 없습니다. 햇볕을 받아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나 호주 같이 땅의 면적이 넓은 나라에 가보면 지역에 따라 일조시간 등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땅이 작은 나라에서는 위도 차이가 크지 않아 전국적으로 일조시간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전국의 일조시간이 비슷할까요? 연구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중 낮의 80%이상 햇빛을 받는 날(일조일수)을 기준으로 할 때 울릉도의 경우 연간 53일입니다. 그런데 영동 지방은 116일로 2배 넘게 차이가 났습니다. 울릉도가 섬이라는 특수한 여건임을 감안하더라도 중부 및 영서지방 86일, 호남 및 충청 일부 지방 78일 등으로 영동 지방과 한 달 이상 차이를 보였습니다. 협소한 국토 면적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조시간에 꽤 차이가 벌어지는 데는 기상 요소가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햇빛은 똑같은 분량으로 비추지만 지역, 지형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처럼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혜인 줄 모르고 자기 능력, 자기 복, 굴러온 행운으로, 자기 재수가 좋아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해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와 실천을 해야 할까요? (동영상 메시지를 잠시 보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함이 없습니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그 어떤 일도 가능함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고통과 위험과 위기를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은혜 받은 자 마리아는 구원의 도구로써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12월 23일
신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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