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상상을 해 보십시오.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앉아 있습니다. 주례 목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신랑 입장!” 소리와 함께 신랑이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주례 목사가 “신부 입장!”하자, 오르간이 신부 입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신부가 절뚝거리며 입장합니다. 그녀의 예복은 찢어졌고 진흙이 묻어있습니다. 팔에는 상처가 났고, 코는 피투성이입니다. 한쪽 눈이 멍들고 부었습니다. 머리는 엉망진창입니다. 그 모습으로 입장하는 신부를 여러분이 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 신부를 맞으려고 서 있는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떻겠습니까? 카렌 메인즈의 [사랑하는 마음에 이르는 열쇠]라는 책에 “떠들석한 신부”라는 제목이 붙은 비유의 내용입니다. 그 비유의 등장하는 신랑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신부는 교회를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신부로 비유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혼인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의미로 카렌 메인즈는 교회가 다툼과 싸움과 분열로 순결하고 성결하며 우아한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다투고 싸우느라 상처와 멍과 엉망진창이 된 교회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신랑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 교회가 오늘 맞이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맞을 것 같습니까? 순결하고 성결하며 우아한 모습일까요? 아니면 신부답지 않은 모습일까요?
교회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흘리신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을 통하여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부산 땅 양정동에도 복음이 전해져 양정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창립 60주년이 되었습니다. 1953년 7월 5일 오 요한 전도사님의 인도로 이곳에서 16명이 첫 예배를 드림으로 양정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신앙의 선배들이 기도와 땀과 눈물과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며 여기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시간 우리는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기도 중의 한 부분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이라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기도하신 기도가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하신 기도와 같은 기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전체도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며 곧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성만찬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고별담화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중요한 말씀이지만 특별히 이 고별담화의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의 말씀이기에 더욱 중요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몇 시간만 있으면 십자가를 지시게 될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 속에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 그리고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강조하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1-23절까지의 내용의 핵심은 교회가 하나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 예수님의 최대의 바램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왜 그렇게 교회가, 믿는 자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21절의 말씀처럼, 교회는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2절의 말씀을 보면, 교회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교회도 그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23절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될 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영광을 받아야 하며, 하나 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교회가 하나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교회가 어떻게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바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이듯이 교회도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는 것,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3절 이하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행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한 사도들의 행전이라는 뜻이지요. 또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도들의 능력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행전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났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복음을 전할 때 문제들이 생겨났고, 박해가 심했습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하였습니다. 그럴수록 초대 교회는 더욱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진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큰 박해가 있어서 예루살렘 교회가 흩어졌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 전통을 지키는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잡혀갔을 때, 교회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사도들을 파송하고, 일꾼을 세우고, 땅 끝을 향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사도들과 교회는 하나님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 순종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했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힘 있게 전해졌고,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고, 믿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협주를 하려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야 하듯이, 축구나 농구나 배구 등 운동 경기에서 이기려면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야 하듯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장군의 작전 지휘에 따라야 하듯이, 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떤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온전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어떤 물질이나 세상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쉽게 깨어집니다. 교회가 어떤 사상이나 이론으로도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이론과 사상은 쉽게 바뀌기 때문에 하나 됨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어둠으로 하나가 되지 않고 빛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악으로 하나가 되지 않고 선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불의로 하나가 되지 않고 의로움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양정교회 교인들은 교회가 하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1절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22절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가 된 것같이 교회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23절에는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 교회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교회가 하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어느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소방대원이라면 불을 끄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소방대원이라면 불을 끄기 위해 소방 호스를 끌어다가 물을 뿌려야 합니까? 아니면 부채질을 하여 불을 더욱 활활 타게 하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은 아니지요? 다시 묻겠습니다. 교회 안에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신자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을 사용하여 말을 옮기고, 소문을 내고, 험담을 하고, 문제를 더욱 키우겠습니까? 아니면 입을 사용하여 기도하겠습니까? 기도는 불 난 곳에 불을 끄기 위하여 물을 뿌리는 것과 같고, 말을 옮기고 소문을 내고 험담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목사가, 장로가, 안수집사가, 권사가, 서리집사가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말만 많이 한다면, 그것은 소방대원이 불난 건물에 물을 뿌리지 않고 부채질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세우신 것은 불난 곳에 불 끄라고 세우셨지 부채질하라고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이 설교의 초점은 누가 부채질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양정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이 교회가 내 교회라는 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살아있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성질이 살아있고, 자존심이 살아있고, 혈기가 살아있고, 쓸데없는 입이 살아있는 교회가 아니라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립기념 주일을 맞는 양정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가 성숙했는지 성숙하지 못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교회 역사가 60년이 되면 성숙한 교회일까요? 교인들의 숫자를 보면 성숙했는지 성숙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교회의 헌금 액수를 보면, 예산의 규모를 보면 성숙했는지 성숙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얼마만큼 하나 되었는지를 보시고 성숙도를 판가름하십니다. 하나 되는 교회는 성숙한 교회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하나가 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 교회가 얼마만큼 하나 되었다고 평가하실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평가하실까요? 우리 교회의 하나된 상태를 보시고 칭찬하실까요? 책망하실까요? 감사하게도 주님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책망하지 않으시고 무엇을 하시느냐 하면, 격려하십니다. 계속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서로 연합하며 성숙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아직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교인 개인의 성숙에서 시작되고, 개인의 성숙은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변화는 안에서 밖으로 변화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밖에서부터 안으로 변화가 들어오게 되면 변화가 온전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변화 없이 옷만 바꾸어 입는다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 제도만 바꾸었다고 해서, 법률만 바꾸었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야 변화가 됩니다. 신앙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마음의 변화 없이 율법만으로, 교회의 제도나 프로그램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부터 변화되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너부터가 아니라 나부터입니다. ‘니가 변하면 나도 변할 게’가 아니라 ‘나부터’ 변해야 합니다. 여러분, 남녀가 서로 불같이 사랑하여 결혼을 한 후에, 왜 부부싸움을 하고, 성격 차이의 문제가 생기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결국 이혼하게 될까요? 그것은 ‘네가 먼저 변하면, 네가 변하는 걸 보고 나도 변할게.’ 이런 생각과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행복한 부부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부터 변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해야 교회가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시끄러웠는데, 그런 그들을 향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부터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높아지고 싶으면 너부터 높아져라가 아니라 나부터 낮아져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이며,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의 원리입니다.
하나가 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힘입니다. 상대방을 죽여서 하나가 되는 것, 또는 완전히 빼앗아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둘째는 타협으로 하나가 되는 방법입니다. 서로 협상해서 반반씩 차지하는 지혜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최선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것은 대립이며 견제입니다. 이 결과는 상대방을 견제하며 균형에 전 신경을 다 쓰다 보니 하나가 된듯하나 비생산적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장점이 다 발휘되지 못합니다. 셋째는 조화입니다. 하나 됨이란 일종의 하모니, 조화입니다. 개성은 살리고 협동하여 상호 보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충족하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나의 장점으로 충당합니다. 조화의 아름다움이 보장되는 화해의 역사입니다.
이런 조화, 하모니를 설명하는 데에는 오케스트라 연주나 합창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님의 지휘에 따라서 한 곡목의 주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초점으로 맞추어, 작곡자이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받들어서 연주해야 하는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입니다. 곡에 맞추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연주를 해야 할 때 연주하고, 가만히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야 할 때 듣고, 크게 소리를 내야 할 때와 작게 소리를 내야 할 때와 함께 소리를 맞추어야 할 때와 서로 연이어 소리를 내야 할 때에 맞추어 연주해야 합니다.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건반 악기 등 각기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려면 입은 더 오래 다물고, 마음과 생각과 귀는 열어 놓으라. 모든 신자들이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동일한 ‘언어’를 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라. 충동적인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 함께 충성하고 있는 다른 신자들과의 사이를 깨뜨릴 수 있다. 또한 자기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피하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로 조화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하나 됨이 깨어지는 일이 생기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공동체 속에서의 성숙한 교제의 모습입니다. 항상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이 아닌가?’라고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모두가 너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면 그 공동체는 깨어집니다. 서로 상처를 입히고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하나가 깨어지는 것은 사탄의 목표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유혹을 통해서, 죄를 통해서, 세상의 공격을 통해서, 거짓 교리와 이단을 통해서 교회를 흔듭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가 된 것을 깨뜨리려는 공격을 계속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어 한 몸이 되었지만 사탄의 유혹과 공격으로 인해 하나 됨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가 되었다가도 다시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가정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든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발전할 수 없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창립60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성도 간에 성숙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이 우리 교회를 통하여 드러나고, 더욱 성숙해지는 교회, 더욱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